각본 / 카르마에 대한 대화록
sample 2022. 4. 15.
  • 각본 타입. 인물 2인 이상의 방대한 대화 형식, 극소량의 묘사.
  • 본 샘플은 MMORPG FF14 칠흑의 반역자 5.3까지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별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행성을 바라본다. 하염없는 그리움은 멀리 있지도, 가까이 있지도 않으며 그 자리에 있다. 에메트셀크는 시선을 돌린다. 허공에서 솟구치는 검은 안개는 거울이 아니었으나 낯선 이를 비춰 주고 있었다.

 

 에메트셀크  (작게 중얼거린다.) 혼의 색만큼은 낯익군.
 

 

 이때, 엘리디부스의 등장.

 

 

 엘리디부스  에메트셀크여.

 

 에메트셀크  (엘리디부스를 보곤 혀를 찬다.)

 엘리디부스  내가 이곳에 온 게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야. 이해해. 자네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가 아니니 말이야. ‘조정자’인 엘리디부스의 자리지.

 

 에메트셀크  그래, 말하지 않아도 그 정도는 알고 있다고, 나도.

 

 엘리디부스  그럼 자네가 왜 여기에 있는지 물어봐도 되겠지? 보아하니 나를 보러 온 건 아닐 테니.

 

 에메트셀크  나이를 드니 농담도 할 줄 알게 된 건가, 엘리디부스?

 

 엘리디부스  그런 자각은 없다.

 

 에메트셀크  ……. 그래, 안부나 묻자고 온 건 아니야.

 

 

 잠시 침묵.

 

 

 에메트셀크  ‘조정자’의 자리만큼 다른 차원의 세계까지 한눈에 담기에 좋은 곳은 없지.

 

 엘리디부스  이제 와서 엘리디부스의 자리를 탐하는 건가?

 

 에메트셀크  ……물리적으로 말이야.

 

 엘리디부스  그렇군.

 

 

 또다시 침묵.

 

 

 엘리디부스  나들이 소풍 온 것마냥 자네가 ‘조정자’의 자리에 한 번씩 오는 걸 알고 있지. 약 삼백 년 동안 꽤 여러 번 들렀어.

 

 에메트셀크  그래.

 

 엘리디부스  물론 이 위성에 오지 말란 규칙은 없다. 허나 묻고 싶군. 왜지?

 

 에메트셀크  최근에 원초 세계와 제 3의 세계에 새로운 영웅이 탄생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그래서 골치 아픈 것들을 관찰하고 있는 중이었어.

 

 엘리디부스  손수 이곳까지 와서 확인하다니. 본인의 정보통이 무능하다는 걸 스스로가 증명하고 있구나, 에메트셀크.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건 이미 알고 있다. 아씨엔 중에서 그것들과 가장 잘 어울렸으며, 또한 그것들을 잘 다룬다는 사실은 모두가 다 알고 있으니 말이야.

 

 에메트셀크  ……. 칭찬, 고맙군.

 

 엘리디부스  귀에 들어오는 걸로 만족하지 않고 이 엘리디부스의 구역에 와서 이러는 이유가 무엇이지? 직접 두눈으로 확인하면 되지 않는가.

 

 에메트셀크  요즘 무릎이 쑤셔서 말이야.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건 영 귀찮아서.

 

 엘리디부스  흐음…….

 

 에메트셀크  (짧게 한숨 쉰다.) 굳이 우리를 드러내서 좋은 건 없다고 봐. 아직 때가 아니야. 모든 일엔 순서가 있고, 적기가 있다고. 그리고 난 요즈음 아주 바빠. 알겠나?

 

 엘리디부스  어쩐지 이번만큼은 납득하기 어렵군.

 

 에메트셀크  (이전보다 더 무거운 한숨.)

 

 엘리디부스  찾고 있는 건가.

 

 에메트셀크  이 내가? 무엇을?

 

 엘리디부스  이제 와서 발뺌하면 무엇이 달라지지?

 

 

 에메트셀크는 심기가 언짢아 보이는 표정을 짓는다.

 

 

 에메트셀크  ……글쎄.

 

 엘리디부스  좋지 못한 태도군.

 

 에메트셀크  관찰 중이었다. 그리고 알아냈지. 우주에 존재하고 있는 혼은 순환하고 있어. 내가 하는 말이니 의심은 하지 않아도 돼. 이 두눈으로 직접 다 확인했으니 말이야. 다만 잘게 조각 나 있을수록 순환은 더뎌진다. 원초 세계부터 거울 세계까지 역대 영웅이라고 불리우는 것들의 혼을 보았을 때 알 수 있었지. 두 번 이상 마주쳤던 혼이 거울 세계보다 원초 세계에서 더 많았으니까. 어떤 거울 세계에서는 혼의 순환조차 확인할 수 없었어. 물론 언제나 들여다보고 있을 만큼 한가하지 않고, 표본도 적으니 아예 순환하지 않는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따라.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우리 고대인들의 초월하는 힘으로 혼은 순환한다는 거야.

 

 엘리디부스  백 년, 이백 년짜리 이야기가 아니군.

 

 에메트셀크  시간은 무한하니 뭐, 잠깐의 여흥이라고 해 두지. 보고 있으면 재미있어, 나름대로. 웃기게도 그 불완전한 것들은…… 흉내를 내지, 우리를.

 

 엘리디부스  그것들이 우리를 흉내낸다니. 듣기만 해도 썩…… 기분이 좋지 않아.

 

 에메트셀크  세계를 흔들 만큼의 큰 재앙이 아니라면 대부분 같은 혼들은 저마다 비슷비슷한 삶을 살아간다. 우리의 모작처럼. 원초 세계와 거울 세계가 이어져 있듯이, 전생과 후생 또한 이어져 있지. 그게 이 우주의 이치고, 진리다. 태어나는 것도, 별의 바다로 돌아가는 것도 우습게도 그 모든 것들이 도돌이표야. 얼마나 진절머리가 나는지 말도 말라고. 질렸어.

 

 엘리디부스  질린다는 것치고는 잘도 들여다보고 있군. 내 눈엔, 에메트셀크, 자넨 탐구하는 자로서가 아니라……. 아니야, 이 말은 안 하는 게 현명하다고 판명되네. 그래서, 찾았나?

 

 에메트셀크  ……찾고 있었다.

 

 엘리디부스  그래, 자네의 연인을.

 

 에메트셀크  (한쪽 눈썹을 치켜올린다.)

 

 엘리디부스  도돌이표라면 ‘그’가 결코 눈에 띄지 않을 수가 없겠어. 떠들석하겠지. 여기저기 쏘다니며 한시도 가만히 있질 않고……. 영웅으론 딱이야.

 

 에메트셀크  미안하지만, 네 놈의 감상을 듣고 앉아 있을 이유가 내겐 없어.

 

 

 에메트셀크는 옷을 털며 일어났다. 엘리디부스가 그 앞으로 성큼 다가간다.

 

 

 엘리디부스  (두 팔을 벌리며) 동포여, 사사로운 감정에 휩싸여 대의를 잊지 말아다오. 우리의 염원을! 이게요름의 실수로 보이드가 일어난 지 오백 년도 채 되지 않았지. 그 와중에 조디아크 님께서 자네의 여흥을 감히 좋아하실지 의문이 드는군.

 

 에메트셀크  (엘리디부스에게 한 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간다.) 도가 지나치군, 엘리디부스. 네 놈 앞에 있는 게 누구지?

 

 에메트셀크  아씨엔 에메트셀크다.

 

 엘리디부스  …….

 

 에메트셀크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해.

 

 

 에메트셀크는 엘리디부스를 지나쳤다.

 

 

 에메트셀크  내 취미도 이렇다만, 앞으로는 네 놈도 훔쳐보지 말고 미리 말해 줬으면 좋겠군. 간다.

 

 

 에메트셀크가 검은 안개 속으로 사라진다. 엘리디부스는 벌린 손을 떨구며 중얼거린다.

 

 

 엘리디부스  가엾은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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