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는 철부지였다.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뜨거운 애, 싫증을 잘 내는 애, 폼에 죽고 폼에 사는 애, 세상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화를 내는 천하 제일의 애. 걔처럼 그 아이를 이루는 것들이 그리도 국화 향처럼 단조롭기 짝이 없을 수가 없었다. 어느날 문득 내가 넌 언제 철들래? 라고 물으면 휘파람이나 불어제끼는 놈이 A였다. 그런 애다, 걔는.
내 앞에 앉아 있는 A는 최근에 서부 영화를 한두 편 보더니 롤링 타바코를 물고 있었다. 그리고 누가 봐도 돈지랄 깨나 했을 것 같은 화려한 지포 라이터, 타바코 케이스. 무겁기는 오지게도 무거울 것 같은 그것들은 실용성은 하나도 없어 뵀다. 애들 장난감 같은 싸구려는 거들떠도 보지 않았을 거란 건 불 보듯 뻔한 것이고. 저 지포 라이터만 해도 담배가 몇 보루지. 몇 보룰까. 돛대만 남기고 아까워서 피우지도 못하고 책상 깊숙이 처박혀 있는 나의 말보루를 떠올린다.
손재주는 더럽게 없는 A에게 담배도 태우는 시간보다 롤링하는 시간이 더 길었다. 뭐가 됐든 배보다 배꼽이 더 컸다. 연초와 필터를 종이로 말고 있는 그 커다란 손을 한심한 눈으로 보고 있노라면, 제 발 저린 A가 내가 무슨 생각인지 속속들이 다 알고는 베시시 웃으면서 선수친다. 어때, 뽀대 나지? 그놈의 뽀대는 맨날 찾어, 나한테. 저러다가 며칠 가지 않아서 곰방대나 파이프를 물어도 나는 그러려니 할 것이다. 면역이 생겼다, 오직 뽀대만을 위해 노고까지 마다하지 않는 놈에게. 그래서 A가 내 앞에서 온갖 똥폼을 잡으며 뭐 하고 있느냐면.
“형을 보면, 시상이 떠올라.”
음유시인 놀이를 한다. 그림쟁이처럼 딱딱한 HB 연필을 잡고, 흑연 아래로 누런 속살을 드러낸 곳을 엄지 손톱으로 긁으며 나를 가늠하고 있었다. A의 반듯한 이마에 지는 주름만은 제법 예술가들의 것을 닮아 있었다. 다시 말해 보지만 오로지 주름만이다. 물고 있는 담배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에 가려져 A의 얼굴이 희끄무레하게 보인다. 바꾼 담배도 시인이란 컨셉을 위한 하나의 아이템에 지나지 않았다고 생각하려니 괜히 웃음이 나왔다. 헛웃음이었다. 어떻게 저렇게 정성스레 미칠 수 있지? 무슨 생각으로 살지, 저 새끼는? 따위의 생각들을 하면서, 나는 니코틴과 타르를 헤쳐 그 너머에 있는 A의 얼굴을 보려고 인상을 써 댔다.
“뭐가 어쩌고 저쨌다고?”
“시상이 떠오른다고.”
“뭐?”
“아, 안 해. 말 안 해.”
음절 하나하나 씹어서 소화하고 싶었다. 그래서 부러 못 들은 척해 봤지만 반쪽짜리 재방송만 해 준다. A은 귀찮은 파리를 내쫓듯 공중에 손을 휘휘 젓곤, 새것으로 보이는 양장 노트를 펼치며 나와의 대화를 포기했다. 싸가지 봐라. 이게 형한테.
이쯤 되면 나는 A가 열심히 쓰고 있는 시를 궁금해야 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다. 세상 제일 진지해 보였지만 결과는 항상 애들 장난보다 못했고, 음유시인 놀이도 얼마 못 가서 질려할 게 뻔했기 때문이다. 한 달에 15만 원 하는 고시원에서 사는 내가 가여워져서 한 번 가 보고 말았던 A의 으리으리한 저택의 방 한 칸에는 그간의 자취들이 잉여처럼 차곡차곡 쌓여 있을 거다. 화방에서 동그라미만 그리게 한다고 빡 친다며 던졌던 전문가용 붓들, 물감 파레트, 이젤. 모으다 말았던 먼치킨 애니메이션의 한정판 피규어들. 사장님 나이스샷을 바라고 했지만 아저씨들 홀애비 냄새 나는 스포츠라면서 처박아 둔 역시나 pro가 붙는 골프채들. 제2의 강태공을 꿈꿨지만 노잼이라 때려치웠던 낚시와 최고급 낚시대. 마니아들 사이에서 부르는 게 값이라는 이젠 나오지도 않는 LP판들. 돈으로 처발랐던 취미 생활이었지만 돌아오는 건 졸라맨이라든가, 예뻐서 꼬신 여자친구가 캐디라든가, 고기는 고사하고 바닷가에서 따온 고동이라든가. 그 애의 시가 아니라 이 뒤로 무엇이 남을까, 하는 것들이 궁금해지는 이 기형.
나는 끝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는 담뱃재와 눈으로 보이지 않는 줄다리기를 하다가 A 앞으로 입도 대지 않은 커피잔을 밀었다. 맛없는 후미진 커피숍의 에스프레소 투 샷이 멋의 기준인 A에게 도저히 못 맞춰 주겠다는 일종의 신호였다. 재떨이로 써, 그냥. 그렇게 중얼거렸다.
커피숍 테라스에는 나와 얘밖에 없었다. 우리. 나와 너. B와 A.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는데 커피는 맛이 없고, 내 담배는 지금 고시원 책상 제일 안쪽에 숨겨져 있었고, 뺏어 피우려고 가지고 나오지도 않았는데 웬. 혀로 입술을 축였다. 길가에 버석거리는 잎들이 이리저리 나뒹굴고 있었다. 가을이고 곧 겨울이 온다. 또 일 년이 그냥저냥 흘러간다. A는 하루 단위로 시시각각 어떤 것에 질려 가고 새로운 것으로 무장한다. 거기서 유일하게 오래된 나.
“멀뚱멀뚱히 앉혀 놓으려고 불렀냐?”
기어코 내가 한마디 한다. 왜냐하면 추웠다. 버버리 코트를 걸친 A는 그리 보이지 않았지만 얇은 후드티만 걸치고 온 나는 나도 모르게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빨리 집에 들어가서 자고 싶다. 몸이 고단해지는 아르바이트의 연속에서 버티고 남은 달콤한 보상 같은 휴식일에 철부지와 어울려 주는 건 칼로리가 많이 드는 일이다. 피곤하고. 피곤하고. A가 나를 아래서 위로 올려다보았다. 눈썹이 삐쭉 솟아 있었다.
“일부러 내가 얼굴 봐 주러 왔는데 말 섭섭하게 한다.”
“누가 누굴 보러 와 줘?”
“내가. 형을.”
커터칼로 깎아 끝이 뭉툭한 연필심이 나를 콕 집어냈다. 웃긴 놈 봐라. 말은 똑바로 해야지.
“시 나부랭이 쓰겠다고 니가 부른 거잖아. 나 보면 시상인가 뭔가 떠오른다며.”
“참 내.”
“참 내?”
허벅지에 다른 편 발을 올리고 의자에 눕다시피 앉아서 손톱을 틱틱 대던 나는 몸을 제대로 일으켰다. 제대로 반문을 하려던 참이었다. A는 에스프레소에 담겼다가 나온 입술을 움직이며 말했다.
“토요일만 되면 게보린 졸라게 처먹고 뒤질까 봐 감시하는 거거든.”
나는 아구를 벌리고 A를 바라보았다. 가냘픈 연필이 큰 손에서 이리저리 돌려지며 실컷 농락당하고 있었다. 나는 아연실색한 내 면상을 감추기 위해서라도 테이블 위로 엎어졌다. 그리고 과하게 어깨를 흔들며 킥킥거렸다.
“존나.”
“…….”
“존나 웃긴다, 너.”
“…….”
거의 습관적으로 뱉어낸 욕지기들이 구부린 몸 안으로 빨려들어가 사라졌다. 낙엽 굴러가는 소리가 들렸다.
“야. 나 추워.”
“…….”
“가자.”
문장에서 목적지가 상실됐다. 하지만 나도 걔도, 그리고 당신들도 알고 있다. A경의 집은 나 자신이 초라해져서 싫다. 고시원은 방음이 안 된다. 그러니까 고로,
그래. 결말은 이래야지. 불려졌으면. 네가 날 부른 이유가 뭐 따로 있겠어.
내 말에 대꾸도 않고 연필만 바삐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치익, 하면서 담배가 장렬하게 죽어 가는 소리가 들린다. 종이가 부욱, 하고 비명을 지르며 찢겼다. 머리 위로 가벼운 것이 내려앉았다.
“나 먼저 계산하고 나가 있는다. 천천히 와.”
독한 연초내가 점점 멀어져 갔다. A가 멀어져 간다. 나는 여전히 책상에 엎드려져 있다가 꾸질꾸질한 얼굴에서 눈물이 다 마를 때를 기다렸다. 그리고 나 혼자만이 남은 테라스에서 고개를 조심스레 천천히 들었다. 머리 위에서 구겨진 종이가 툭, 하고 떨어졌다. 궁금하지 않지만. 얼마나 개떡 같은 소리를 씨부려 놨을지, 날 보면 뭐가 떠오른다는 건지 똑똑히 봐야 했기 때문에……. 그랬기 때문에. ■